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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이야기: 아미타불 정토, 7부 중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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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또 말하고 싶은 사람‍ 있나요? 안 그럼 어제 밤 농담을‍ 다시 읽어주겠어요. 네, 토고? (스승님께서 행복해 보이지‍ 않으셔서 좀 슬펐습니다)‍ <스승님께서 행복하지‍ 않으셔서 약간 슬펐답니다>‍ 네. 『그게 인생이죠!』‍ (전 외할아버지 손에‍ 자랐습니다)‍ <저는 외가쪽>‍ 할머니요. <외할아버지께서‍ 키워주셨습니다>‍ (그는 신앙인으로‍ 수행을 하셨습니다. 제가 스승님을 위해‍ 저희 모국어로‍ 평화를 기원하는 노래를‍ 불러드리려고 합니다. 단지 그뿐입니다)‍ <그는 수행자이셨고‍ 어떤 종교를 믿으셨습니다. 스승님 마음이 평온하길‍ 바라는 노래를 하려 합니다>‍ 뭐라고요? <그가 노래를 부를 겁니다>‍ 무슨 노래요? <스승님의 평화 기원 노래요>‍ 평화기원요. 감사합니다!

여러분에게 평화가 없다면‍ 내가 늘 평화로울 순 없죠. <고국의 언어로 부른 답니다>‍ (창조주의 뜻을 이루기 위해‍ 쉼 없이 기꺼이 밤을 새워 일을 하네.‍ 스승께서 걸으신 길을 제자들은 따를 수 없는가?) (이 노래의 의미는:‍ 스승님 제자인 저희가, 그는 수행자셨고‍ 예수님을 따르셨거든요) <노래의 의미는 이렇습니다. 저희는 스승님을 따르고 할아버지는 예수님을 따르셨다고요> (그가 이렇게 말하곤 하셨죠. 『예수께서 체험한 모든 게‍ 이 생에서 예수를 따르는‍ 우리에게, 각자의‍ 집안에서 일어난다』)‍ <예수께서 경험하신 것은 여기 각 집안에도 있어요>

(한 집안에 분명히‍ 예수, 본디오 빌라도, 유다, 예수를 못 박은‍ 자들이 있다) <각 집안에도 예수와 빌라도 그리고 예수를 고통스럽게 한 모든 사람이 있어야 하죠. 각 집안에요> 각 집안에 예수가 있고 예수를 죽인 자, 빌라도가‍ 있다는 거죠. (유다도요) 네, 유다도요. (그래서 그는 우리에게‍ 조심하라고 말했어요. 예수의 길을 따르는‍ 우리에게는 각 집안마다 이런 작은 복사본이‍ 있는데 그것이‍ 스승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에 대해 조심해야 한다고 했죠. 각 집안에 있었으니까요. 복사본처럼요> 서너 사람 중에서요. <이 사람들 중에요, 네>‍ 아, 네 마찬가지죠. <그게 스승의 길이니까요>‍ 네, 예수 시대처럼요.

(그래서 말씀 드리고 싶어요. 『걱정 마세요. 우리는‍ 하나의 가족이니 이런‍ 모든 사람이 있어야 하죠』)‍ 아뇨, 난 원치 않아요. <그는 스승님께‍ 무슨 일이 일어날지‍ 걱정 마시라고 했죠. 우린 한 가족이고‍ 그처럼 일도 생기니까요>‍ 난 그들이 깨어나길 원해요. 2, 30년이 지났으면‍ 깨어나야죠. 그렇지 못하면‍ 집에 가서 생각해봐야 해요. 이렇게 말하면서 버릇을 망치진 않아요. 『괜찮아요! 여전히 당신을 사랑해요. 계속 멍청하게 낮은 등급에 있어요』 계속 그러라고 하진 않죠. (감사합니다, 스승님)‍ 하지만 고마워요, 고마워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전 사람들이 알길 바랍니다. 스승님께서 오는 게 아니고‍ 그 반대라고요. 우리가‍ 스승께 다가가야 한다고요. 우리는 스승님께 이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스승님께서 우리의 방식을‍ 따르는 게 아니죠) <스승님께서 우리에게 오시는 게 아니라 우리 각자가 스승님께 다가가기 위해 일을 해야 함을 우리가 알길 바랍니다> 바라는 바예요. (그게 아주 중요합니다. 스승님만이 아시니까요. 우린 아무것도 모르죠. 여기 현생에 대해서도‍ 우린 아무것도 모릅니다. 하지만 스승께서는 이미 자신을‍ 아시죠. 지혜가 있으십니다) <스승님만이 그 지혜가 있고 우린 사실 아무것도 모르기에 그건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가 이 생에 여기 산다해도 우린 아무것도 모르지만 스승님은 알고 행하죠. 지혜가 있으니까요> (스승님은 우리가 잊고 있는‍ 걸 기억하게 돕고 계십니다. 깨어나길 원치 않는 이들은‍ 너무 안됐습니다) <스승님은 우리가 잊은 것을 깨닫도록 돕지만 사람들이 기억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그들 잘못이죠> 그런 사람들이 많아요. 진정한 수행자는‍ 단지 소수입니다. (그들은 또다시 천 년을‍ 기다려야 합니다. 천 년이 지나서야‍ 우린 다시 스승님 같은‍ 스승을 만날 것입니다) <그들은 천년 이상 기다려야 할 겁니다. 천년 전에는 이처럼 스승을 만날 수 없을 테니까요>

당신은 그 모든 걸 어떻게‍ 알죠? 어떻게 알아요? (스승님, 전 압니다. 당신을 알기 위해선, 당신께 이르기 위해선‍ 어려운 상황을 겪어야‍ 하기 때문이죠. 당신께 이르려면‍ 힘든 상황 속에서‍ 많은 노력을‍ 해야 합니다. 노력하지 않으면…)‍ 그들은 몰라요, 맞아요. <스승님을 알려면 특별한 상황에 처해져야 합니다. 알려고 애쓰지 않으면 알지 못할 겁니다> 그래요 맞아요.

그래서 모르는 사람은‍ 오지 않길 바라는 거죠. 그래야 아는 이들이 계속‍ 자신의 일을 할 수 있죠. 그냥 이따금 여기 와서‍ 우리가 쌓아 올린 좋은‍ 에너지를 망치지 말라고요. 모든 사람이 진보하는데‍ 그런 사람은 퇴보하며‍ 모든 걸 끌어내려요. 완전히 차원이 다르고‍ 이해하는 게 다르고‍ 등급이 다른 것과 같죠. 모든 이가 함께‍ 올라가야 해요. 다소간 차이는 괜찮지만‍ 너무 차이가 크다면 그는‍ 집에서 기다려야 한단 거죠. 아마 집에 가라고 하면‍ 좀 더 깨어나게 될 겁니다. 그저 주위를 맴돌며‍ 아무것도 안 하고 전혀‍ 진보하지 않는 것보단 낫죠. 아난처럼요. 항상 부처와 같이 있어서‍ 진정으로 깨닫진 못했죠. 그래서 승단에서‍ 쫓겨났고 그런 뒤에야‍ 나아질 수 있었어요.

하지만 정말 고마워요. 왜 고개를 젓고 있나요? (우리가 눈을 뜨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떠야 하는‍ 눈은 그 눈이 아닙니다)‍ 그가 뭐라고 했나요? (우리가 떠야 하는 눈은‍ 육신의 눈이 아니라고요) 그래요. <내면의 눈을‍ 떠야 한답니다. 우리가 열어야 하는 건 육신의 눈이 아니라 내면의 눈입니다> 알아요 누군가…‍ (힘들게 일하죠 …)‍ 어떤 이는 너무 흐릿해요. 네, 때론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 단체를 위해 뭔가를 하면‍ 에고가 나와서‍ 문제가 생깁니다. 특히나 자신의 에고를‍ 스스로 점검하지 않으면요. 그리고 일단 이런 성향이‍ 있으면 마야가 와서‍ 더욱 심해지게 만들죠. 내가 말했죠. 『우리 모두는 내면에‍ 분노와 두려움이란‍ 감정이 있다』고요. 하지만 그걸 사용할 지는‍ 자신에게 달린 거예요.

난 꾸밈없이 말해요. 뭐든 있는 그대로 말하죠. 그걸 두려워하지 않아요. 두려움을 겁내지 않아요. 내가 두려움이 있다고‍ 여러분이 떠나지 않을까?‍ 두려워하지 않아요. 누가 가면 내겐 잘된 일이죠. 그럼 누가 진짜 친구이고‍ 아닌지, 누가 지혜롭고‍ 누가 아직 낮은지 알죠. 내게도 다 있어요. 난‍ 여러분 앞에서 거리낌 없이‍ 울어요. 자연스런 일이죠. 참을 순 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아요. 왜 울고 싶은데‍ 억지로 참아야 하나요? 부처가 고통 받았는데‍ 내가 울지 않는다면‍ 내가 목석 아닌가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걸 읽었을 때‍ 난 스승이 되기도 전이고‍ 주부였을 때였는데도‍ 엄청 울었어요. 그 당시에 나는‍ 불교와 기독교를 동시에‍ 믿었어요. 그러니 당연하죠. 그리고 서양에는‍ 경전이 없어요. 그래서 성경을 읽었죠. 난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대했는지 전부 읽었어요. 그게 나였다면 얼마나‍ 고통스럽고 굴욕적이었을까? 그리고 그와 같은 성인을‍ 그렇게 대하다니 사람들이‍ 얼마나 무지하고 잔인한가‍ 생각했어요.

사람들은 그의 잘못을‍ 입증할 수 없었죠. 그걸 입증했다면 좋아요. 누군가를 죽였거나‍ 뭔가를 훔쳤거나 나쁜‍ 일을 하라고 말했다면요. 그런 걸 증명할 수 있다면‍ 『그가 나쁘다』며 뭔가를‍ 행할 수도 있지만 아니었죠. 그가 나쁜 사람이라는‍ 증거는 아무것도 없죠. 성인은 고사하고요. 하지만 그는 감히 자신이‍ 신의 아들이라 말했어요. 그게 그의 유일한 죄였죠. 그래서 Tim Qo Tu에‍ 대한 말을 안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다행히 아직 다른 건‍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죠. 그래서 내가 더는 말하지‍ 않겠다고 한 거예요. Tim Qo Tu만 해도‍ 정말 다른 생각과‍ 다른 기대와 다른 개념이‍ 있을 거예요. 하지만 예수는 거짓말을‍ 할 수 없었죠. 그는 자신이‍ 신의 아들임을 깨달았고‍ 그래서 그렇다고 했어요. 그는 제자나 신도들에게‍ 그렇게 말했죠.

만일 여러분이 의사라면, 의대를 졸업했다면 의사인‍ 걸 알아요, 그렇죠? 그럼 나가서 『아니에요. 난 의사가 아니에요. 난 겸손하거든요, 난‍ 아니에요!』라 할 순 없죠. 그럼 어떻게 사람들이‍ 믿고 치료를 받겠어요? 의사는 자신이 의사라고‍ 말해요. 잘난 체하거나‍ 거만해서가 아니죠. 그저 사실을 말하는 거죠. 그와 같아요 비슷해요. 예수나 부처도 비슷해요. 부처도 자신이 부처라고‍ 말했어요. 뽐내거나‍ 교만한 게 아니었죠. 모든 경전을 읽어봤는데‍ 부처가 교만하다고‍ 여길 만한 게 없었어요. 그리고 성경도 읽었죠. 예수의 말에는 전혀‍ 교만 같은 게 없었어요. 그는 진실만 말했어요. 사람들이 너무 어리석어‍ 『어떻게 신의 아들이 그럴‍ 수 있어?』라 여기는 거죠.

그럼 신의 아들은‍ 어때야 하나요? 그것도 알지 못하죠. 『어떻게 신의 아들이‍ 맨발로 다닐 수 있어?』‍ 하지만 나처럼 하이힐을‍ 신었다면 또 『어떻게‍ 신의 딸이 하이힐을‍ 신을 수 있어?』라고‍ 말할 겁니다. 『신의 아들이 힘이 없어.‍ 왜…‍ 다른 이들은 치유하면서‍ 왜 자신은 못 고쳤지? 그 당시 로마병사들의‍ 감금에서 왜 벗어나지‍ 못했지?』‍ 그는 죽어야 했어요. 그 당시 인류를 위해‍ 누군가는 죽어야 했어요. 그 단체에 유다 같은 사람이‍ 있다면 예수가 죽어야 했죠. 그가 죽은 뒤에도‍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은‍ 여전히 그를 의심했어요. 그가 부활했는데도요. 도마요. 누군가 예수가 부활한 걸‍ 봤죠. 아마도요.

물론 예수는 원한다면‍ 그렇게 할 수 있어요. 신의 아들이니 할 수 있죠. 기적을 행할 수 있어요. 죽은 자를 일으키고 장님의‍ 눈을 뜨게 하는데 왜 자신을‍ 일으켜 세우지 못하겠어요? 그는 할 수 있어요! 몇몇 제자들이 그것을‍ 목격하고 그와 이야기까지‍ 했어요. 한 명이 아니라‍ 두어 명이었죠. 하지만‍ 도마는 여전히 믿지 못했죠. 왜죠? 왜 형제자매들이 그에게‍ 거짓을 말하겠어요? 그건 끔찍해요! 입문자 형제자매들의‍ 말을 의심하는 건요. 그런 거예요. 게다가 12사도‍ 가운데 하나였죠. 2천 년 전의 일이에요. 당시에는 두뇌를 흐리게‍ 할 오염과 공해도‍ 아직 없었어요. 하지만 여러분이 여전히‍ 부처가 되길 원한다면‍ 가능해요. 될 거예요.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나중에 될 거예요. 다른 생에서요.

그런데 경고하겠어요. 모든 부처의 희생은 진짜죠. 여러분은 지금 깨닫고‍ 왕국의 지위를 누리며‍ 죽을 수 있어요. 하지만 부처가‍ 되고자 한다면‍ 얘기가 다르죠. 그건 스스로 택한‍ 길이에요. 난 관여하지 않을 거예요. 부처가 되고자 하는‍ 순간에 아마‍ 해야 할 많은 일들이‍ 있을 겁니다. 그때 날 부르지 말아요. 네? 전화기는 꺼져 있을 거예요. 자신이 부처이니 마땅히‍ 그렇게 해야 돼요. 왜‍ 또다시 스승을 부릅니까? 안돼요! 원한다면 성장하고‍ 스승이 되세요. 성장하세요. 자립적으로 일을 하고‍ 스스로 하세요! 난 다른 일이 있어요.

난 경고했어요. 불의 시험, 내적 외적 고통, 즉 정신적, 지적, 육체적‍ 고통이 있을 거예요. 모든 게 다 있죠! 그 당시‍ 부처는 내적 고통에 대해‍ 아무 말 안 했지만‍ 많은 고통을 받았어요. 간혹 일부가 드러났죠. 데바닷다 경우는 명백하죠. 하지만 다른 경우도‍ 있어요. 가령 말의 먹이를‍ 석 달 동안‍ 먹어야 했었죠. 제자들의 악업 때문에요. 부처는 이미 부처였죠.

인도에 있던 건 행운이죠. 인도인들은 대개 아주‍ 온화하고 믿음이 강해요. 그래서 그처럼 몇 가지‍ 경우만 듣는 거예요. 예를 들면 그의 사촌이‍ 그를 죽이려 했다든지‍ 몇몇 제자들의 잘못으로‍ 그가 석 달 동안 말 먹이를‍ 먹어야 했다든지,‍ 예를 들면 그래요. 심지어는 누군가 그에게‍ 개고기를 주며‍ 채식이라고 하기도 했죠. 예를 들면 그래요. 그와 그의 제자들에게요. 개고기요! 채식하는 부처에게요! 그리고 또…‍ 우리는 그저 가끔씩‍ 조금 들을 뿐이에요. 아마 제자들이 그런 걸‍ 듣겠죠. 교훈을‍ 얻기 위해서요. 부정적인 가르침조차도‍ 알기 위해 배워야 해요. 스승이 되고자 할 경우엔‍ 알아야만 하죠. 항상 손뼉을 치며‍ 『당신을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라고‍ 말하길 기대하지 마세요. 처리해야 할 많은 것들이‍ 있어요.

인간의 에고는 쉽지 않죠. 내가 모든 걸 숨긴다면‍ 부정적인 건 모두…‍ 많이 말을 한 것도 아녜요. 단지 약간만 말했고‍ 그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해요. 그러니 알겠죠? 내가 한‍ 일은 여러분을 위한 거죠. 내가 쓴 돈은 전부 여러분과‍ 세상을 위한 거예요. 난 아무 잘못도 안 했죠. 누가 뭐라 하든 신경 안 써요. 문제는 여러분 자신이‍ 한 일을 알아야 한단 거죠. 다른 사람의 말이 아니라요. 온 세상이 날 칭송해도‍ 스스로 안 좋은 걸 안다면‍ 견딜 수 없을 거예요. 온 세상이 날 나쁘다고‍ 말해도 스스로 좋은 걸 알면‍ 행복하겠죠. 상관 안 하죠.

그 당시 모든 이가 예수를‍ 나쁘다고 했죠. 어떻게요? 병자를 치료해주고‍ 장님을 보게 해주고‍ 사람들에게 신을 믿고‍ 나쁜 생활방식을‍ 바꾸라고 말한 것 외에‍ 그가 누구에게 뭘‍ 어떻게 했나요? 그가 뭘 했죠? 잘못한 게 있나요? 잘못한 건 없어요. 그가 잘못한 게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이는 없죠. 그는 솔직했을 뿐이에요. 그래서 신의 아들이라 했죠. 그는 신의 아들이었어요! 그는 신의 아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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